<시집살이 이야기 집성> 펴낸 국문과 신동흔 교수

 현장의 문학, 민중의 문학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이야기가 학문의 한 분야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우리대학 문과대 국어국문학과 신동흔 교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옛 이야기와 경험담을 듣고 그것을 기록한다. 할머니 109분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담은 <시집살이 이야기 집성>을 펴낸 그를 만나봤다.

몸의 문학, 구비 문학

대학입학 당시만 해도 신동흔 교수는 역사나 철학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역사와 철학이 문학 속에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됐다. 그 중에서도 세부전공은 구비문학이다. 그는 어렸을 적 선친과 마을 어른들께 옛이야기나 경험담을 들으면서 자랐는데 이런 기억들이 구비문학을 공부하게 된 바탕이 됐다고 한다. 그는 “녹음기를 들고 방방곡곡 다니며 어르신들 노래 한자락, 이야기 한 보따리 듣고 이를 세상에 남기는 것이 나에게 맞는다”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구비문학이야말로 ‘진짜 문학’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신교수는 구비문학을 “현장의 문학, 민중들의 문학”이라고 묘사했다. 구비문학은 배우지 못한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몸짓으로 우러나온 문학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식인들의 문학이 머리의 문학이라면 구비문학은 몸의 문학이라고 묘사했다. 몸의 문학을 조사하는 신교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전했다. “조사를 갈 때마다 ‘삶을 살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철학자고 세상의 중심이며, 우주다’란 생각을 해요. 처음 봤을 때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이야기가 끝난 후엔 등 뒤에서 후광이 보이죠”

과거 구비문학은 기록문학처럼 텍스트로 남는 게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지만 이젠 녹음으로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신교수는 역사의 산 증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여자, 시집살이, 서러움.

신교수가 그동안 해왔던 연구에서는 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 얘기도 간간히 듣게 됐다. 그는 “할아버지들은 모르는 얘기도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고 세상에 대해 평가도 하신다면, 할머님들의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진솔했다”며 “그래서인지 점점 할머님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연구를 시작하면서 할머님들이 살아온 얘기는 시집살이를 빼놓을 수 없어 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된 것이다.

신교수와 동료 연구원, 대학원 제자들은 직접 200분이 넘는 할머니들을 찾아다녔다. 찾아가면 “시집살이 안 했어요”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시집살이 얘기 좀 들려 달라고 말하면 눈물부터 흘리는 분도 계시고 밤새서 얘기를 해주신 분도 있었다. 그렇게 조사를 갔다 오면 가끔 할머님들의 기구한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우는 연구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대체 어떤 이야기였길래 조사원들이 눈물까지 흘렸을까. 한 할머니는 젊었을 시절 남편이 놀기만 해서 늦은 시간까지 그릇 장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졌는데 늦게 돌아왔다고 남편이 그릇을 다 깼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이 불을 땔 나무조차 해 놓지 않아 할머니가 직접 해 와도 그것 마저 옆집 과부가 불쌍하다고 다 내주신 일도 있었다. 또 다른 할머니는 파마를 했더니 시아버지가 “며느리 죽는 것은 소 한 마리 죽는 것 보다 못하다”며 내쫓았다. 서러워서 죽으려고 하는데 누가 말려 다시 집에 돌아왔더니 시아버지가 “죽지 왜 돌아왔냐”며 방에 못 들어오게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친구 시아버지와 결혼한 할머니, 아버지 노름빚 탕감을 조건으로 시집에 팔려간 할머니 등 책에는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신동흔 교수는 “할머니들이 얘기를 해주시며 속에 있는 게 풀리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학생들도 각자 할머니께 살아온 얘기를 해 달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뭐 하러 물어봐’ 하실 수도 있지만 할머니의 삶과 한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속으론 굉장히 고마워하실 것 이란 얘기다. 그는 “학생이 할머니를 새로이 이해하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우리 자식 다 컸구나’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라며 “그런 과정을 통해 세대 간의 벽이 허물어 질 것”이라 주장한다.

앞으로의 연구계획

신동흔 교수는 현재는 ‘한국전쟁 체험담’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중이다. 이 외에도 요즘엔 제자들과 독일 민담, 러시아민담 등에 대한 세미나도 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였던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라는 일본책이 있는데 신교수가 보기에는 ‘엉터리’라고 한다. “그림형제 민담을 왜곡했는데 그런 책이 판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기회가 된다면 그림형제 민담에 대한 책을 써서 영어, 독어로 번역해 그 쪽 시장에 책을 내고 싶다고 한다.

신교수는 우리 학문도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K-POP을 한류라고 얘기하는데 학문, 문학이 외국에 진출하는 게 진정한 한류”라고 말한다. “소설을 읽은 후엔 온몸에 전율이 오거나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데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번역돼 출판되는 문학서들만 수백 종이고 수십만 권이 팔리는데 우리나라 문학이 일본에 팔리는 것은 열 종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런 것들을 깨닫고 공부해서 우리의 학문이 세계로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저는 건국대학교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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