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성함과 동시에 성적욕구 해소로 표현되는 본능이 공존하는 자극적인 단어다. 성에 대해 개방적 사회이던 폐쇄적 사회이던 간에 성과 관련된 소재들은 빠르게 전파된다. 언론은 이를 즐기듯 ‘전시’하고 성을 매개로 한 새로운 사건들을 ‘발굴’해낸다. 과거에 비해 보도되는 성폭행사건이 증가한 것은 나름 성폭력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 전환돼 이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독자와 시청자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언론의 역할도 어느 정도 존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성폭행 관련 검색어인 ‘윤창중’은 검색 순위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았다. 대중들은 성폭행사건이 보도된 시점부터 기자회견이 있기까지 수많은 음모론적 의견을 쏟아내며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한편으로는 밀봉인사에서부터 예상된 참사라는 의견도 있었고 엉덩이를 ‘Grab’ 당한 현지 여성지원요원은 종북페미니스트라 몰리기도 했다.

덕분에 박 대통령의 ‘성공적이라는’ 방미일정의 무게추는 성폭행으로 기울어버렸다. 다른 방미일정에 대한 평가가 묻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통상임금문제를 두고 댄 에커슨 GM회장과에서 나타난 임금체계 관련 논의가 그렇다. 에커슨 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일본의 엔저 문제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한 우리나라 임금지급 방식이 과하다며 선제조건으로 임금 문제를 해결한다면 우리나라에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통상임금은 고정ㆍ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모든 임금이고 이는 근로시간 이외의 추가 노동에 대해 50% 할증된 임금을 지급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지난해 4월, “근로자에 대한 임금이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것이라도 그것이 정기적ㆍ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최종판결을 내린 바 있다. 에커슨 회장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해 더 많은 할증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과한 인건비로 판단했고 박 대통령은 “GM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겪고 있는 문제”라며 동의했다. 결국 사법부의 판결을 행정부 수장이 뒤집겠다는 이야기다.

방미일정 중 일반 대중과 가장 맞닿아 있는 현실인 임금관련문제는 성폭행 파동 때문에 묻히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히 ‘국격 훼손’ 등의 강도 높은 단어로 미국방문을 성폭행파문으로 치환하는 것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행위다. 코리아 세일즈, 대북 공조, 통상임금 관련 발언 등 박 대통령이 미국에서의 말과 행동은 차기 국정에서 드러날 것이고 이는 대중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금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방미의 공과 과오를 구분해야 한다. 윤 대변인의 성폭행 사건 또한 명확한 해결이 있어야겠지만 박 대통령의 방미와 차후에 나타날 그 결과를 살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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