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에는 땅굴로 유명한 구찌마을로 향했다. 구찌마을에 도착하기 약 10분 전, 고무나무 밭에 들렸다. 고무나무는 살균작용이 뛰어나 아기 젖병 등에 사용되며 10년에서 25년까지 채취가 가능하다고 한다.

▲ 구찌마을가기 전, 고무나무가 울창한 곳에서 찍은 단체 사진

 

구찌는 호치민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구찌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전략요충지였다. 때문에 구찌는 미군의 폭격이 가장 심했고 고엽제 역시 다량으로 살포돼, 베트남전쟁으로 가장 심하게 황폐화된 곳이라고 한다.

베트남군은 게릴라 활동을 펼치기 위해 이곳에 지하 3층으로 이뤄진, 총 250km 구찌 터널(땅굴)을 만들었다. 가이드는 “구찌터널은 요리, 목욕, 수면 등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됐고, 곳곳에 적군을 무찌르는 함정을 파놓았다”며 "약 1만 5천명이 이 안에서 함께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터널의 입구는 나뭇잎 등으로 정교하게 위장돼 있어 미군은 한참 지나서야 터널의 존재를 알게 됐다”며 그러나 “미군은 터널을 소탕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입구 몇 곳만 파괴하는 것으로 그쳤다”고 덧붙였다. 터널의 통로는 세로 약 80cm, 가로 50cm로 아주 협소해 체구가 덩치가 큰 미군은 접근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터널을 체험한 대부분의 학우들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생활했는 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구찌터널로 통하는 구멍이다.

▲ 터널로 통하는 구멍이다.

크기는 A4용지보다 약간 크다.

 

 

 

 

 

 

 

 

 

▲ 오리걸음으로 걸어야 이동이 가능한 터널 내부
▲ 구찌터널로 들어가고 있다.

 

 

 

 

 

 

 

 

 

 

 

 

당시 베트남군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스카프를 이용했다. 따라서 스카프를 잃어버리는 것은 곧 죽음이라 할 수 있다.

▲ 베트남군은 터널 입구에서 잠복해 있다가 적군을 해치기도 했다.
▲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때 쓰이는 스카프

 

 

 

 

 

 

 

 

 

베트남군은 함정을 만들면서 적군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들은 소똥과 소오줌을 약 3주동안 숙성시켜 못을 만들어 적군이 구멍에 빠졌을 때 이 못에 바로 찔리게끔 설치한 것이다.

 
▲ 이 곳에 빠지면 파상풍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구찌터널에는 무기제조실도 있다. 베트남군은 이곳에서 새로운 무기를 제조하기도 하고 버려진 적군의 무기를 재활용하기도 했다. 가이드는 "베트남군은 미군의 무기를 재활용하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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