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기고 청탁에 주제를 정신없이 고민했다. 학교에서 최근에 생긴 일과 발생할 일을 떠올렸다. 예정발행일이 15일이니깐, 다음 주에 있을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건대신문 홈페이지에서 최근 몇 년 치 대동제에 관한 기사를 훑어봤다. 신기하게도 매년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올라왔다.
첫째, 축제가 끝난 후 쓰레기 처리가 잘되지 않았다. 둘째 천막 등과 같은 빌려간 비품의 회수가 잘되지 않았다. 셋째 술을 많이 마신 나머지 다툼이 일어났다. 넷째 고성방가 때문에 근처 주택가에서 민원이 생겼다. 긍정적인 측면의 기사는 축제 운영 주체인 총학생회의 기획 능력에 따라 다른 기사가 나왔다. 그에 비해 부정적인 기사는 단골소재처럼 매년 비슷한 형식을 반복했다.
앞서 열거한 네 가지 사안은 어렸을 적 부모님이 우리들에게 해주던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첫째, 쓰레기를 버리지 마라. 둘째, 빌려간 물건은 돌려줘라. 셋째, 싸우지 마라. 넷째, 남에게 피해를 주지마라. 참으로 간단한 격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상하게 축제 때가 되면 이성이 마비되곤 한다.
혼인과 취업이 가능한 사회인이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20대 성인이자, 대학교를 다니는 지성인인 학우들에게 이런 사소하고도 작은 문제로 꼬치꼬치 훈계할 권리는 내겐 없다. 난 선생님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다. 같은 학우일 따름이다. 다만 ‘수준’을 보여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은 있다. 왜냐하면 가정교육 정도의 기본 에티켓은 개인에서 공동체의 차원으로 격상되면 공동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외국 유적에 낙서를 한 한국인은 그 개인이 비판받지 않는다. 한국인으로서 비판받는다. 국가대표 거리응원전에서 난장판이 된 거리의 책임은 개개인에게 있지 않다. 한국인에게 있다. 그렇다면 우리대학 축제인 대동제 진행의 수준을 보여주는 주체는 누굴까? 적어도 총장과 총학생회장에게만 결정적인 책임을 물리긴 힘들어 보인다.
이번 축제는 매년 특정 시기에 하던 것을 1학기 동안 고스란히 참았기 때문에 그 열기가 아주 열광적일 가능성이 높다. 축제를 통해 젊음의 열정을 폭발시키는 건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그건 청춘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다. 다만 축제를 즐기는 그 수준 또한 폭발 시켰으면 좋겠다. 다음호 건대신문에서 ‘대동제의 이면…지성 없는 대동제’ 류의 기사를 안 봤으면 하는 건 어려운 희망사항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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