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 첫눈이 내리면서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렸는데요. 이번 호에는 정치대 정치외교학과의 한 학우가 ‘눈’에 대한 진솔한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읽는 내내 하얀 눈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연입니다. 들어볼까요?


14일, 첫눈이 왔다. 매섭던 겨울비가 포근한 눈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참 신비로운 일이다. 그 차갑던 겨울비가 한순간 눈으로 바뀌는 것 마냥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하지만 때론, 더욱 기묘한 일들을 함께 내 앞에 덩그러니 놓아두기도 한다.

6년 전, 한 사람을 참 좋아했다. 이유는 몰라도 그 사람을 보면 신이 났고, 즐거웠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지만 아픈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전했다. 혹시 더 멀어지진 않을까 고민했지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내 생각에 확신이 들어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멀어졌다. 해가 바뀌어 함박눈이 몰아치던 어느 날, 그 사람의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나는 그 사람과 가장 먼 사람이 되었다. 그 함박눈을 치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나는 한 여자를 참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멀어진 사람, 그 사람 덕분에 소소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그 깨달음 덕분인지, 이 여자와 연인으로 만나고 있으니 함박눈과 함께 기억나는 사람에게는 참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여자 친구와는 1년을 넘게 사귀어왔지만, 언제나 새롭고 기분이 좋다. 결혼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이런 여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나에게는 참 새로운 여자다. 그녀는 대인관계도 좋아서 주위에 친한 선, 후배들도 많다.

첫눈이 내린 날, 그녀는 나와 연락이 끊겼다. 술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 몇 통의 전화를 하고 수십 통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답이 없었다. 동아리 선배와 술을 먹는다는 날이었다. 연락이 끊기고,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대중교통도 모두 끊겼고, 수중에 돈도 없었다. 결국, 여자 친구가 술을 먹는다고 했던 주변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혹시 길에 쓰러져 있다고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는지, 나쁜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을 쏟아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사진을 경찰에게 전송하고 나는 3시간 동안 그녀의 소식을 알아보려 했다. 그리고 새벽,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선배와 같이 잤다. 그녀는 울먹이며 나에게 “미안해. 그런데 오빠…. 끝까지 간 건 아니야….”라고 했다. 그녀가 집에 들어갔다고 말한 오전 9시 55분까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올해, 아직 내 눈으로 첫눈을 보지 못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첫눈을 함께하며 함께 발자국을 남기려 했다. 대신, 누군가가 먼저 그녀와 함께 발자국을 남겼다. 처음 보는 발자국 때문일까? 나는 얼어붙어 있다. 눈이 그 자리에서 얼면 치우기 더 어려워지는데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6년 전, 내 마음에 쌓였던 함박눈을 마음 한 구석으로 치우는 데 걸린 시간은 2년이였지만, 지금 쌓인 첫눈은 바라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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