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몇 년 동안은 참여의 의의라는 표현과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였다. 동고동락하며 행위의 가치를 불어넣느라 친구로서 큰 빚을 졌다. 결실이라거나 성취와 같은 표현과는 도무지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참여의 의의와 가깝게 지내야 했다. 최근 몇 주만 해도, 착함과 정상을 겨우 구분하게 되었을 때 그 구분을 뒤엎는 비정상의 표상이 나타났다. 오랜 시간 준비했던 시험에선 떨어졌다. 여덟 번의 방문 끝에 커피 산미가 정확히 취향의 가운데에 들어맞는다고 확신했던 카페는 아홉 번째 방문에서 원두를 바꿨다. 기간을 몇 달로 늘린다면 금세 응모작 분량을 넘을 것이다.

그러던 중 당선 소식을 전달받아 오랜만에 성취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실 이미 참여의 의의와 얘기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작년 응모작과 함께 원고지 160장가량의 글을 쓰는 동안 적어도 키보드 타수는 늘었을 거라며 마음대로 싱겁게 결론지었다. 그래서 당선 소식과 함께 찾아온 성취에게 낯가림을 보였다.

물론 성취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금방 곁을 떠날 것이다.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일로, 희미하지만 나름의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에 성취가 찾아온다면 좀 더 반갑게 맞이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성취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이미 일상에 잠깐 들렀을지도 모르고, 혹은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취의 손을 잡고 와주신 심사위원과 성취와의 만남 장소를 주선해주신 건대신문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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