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내리치는 도시에 발을 디뎠다. 코로나로 인해 진행되지 못했던 해외역사문화탐방이 4년 만에 열렸다. 필자와 일행은 설레는 마음과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로 베트남에 도착했다.

 
호찌민에 위치한 전쟁박물관 외관/사진·최이재 기자
호찌민에 위치한 전쟁박물관 외관/사진·최이재 기자

먼저 베트남의 중심 도시, 호찌민에서 탐방을 진행했다.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전쟁 박물관에 방문했는데 그곳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진들이 나열돼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온몸이 망가져 있는 피해자의 사진을 보자마자 왜 잘못 없는 민간인이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권력을 가진 자의 욕심으로 발발되는 전쟁 속, 아무 죄 없는 민간인만 죽어 나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두 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필자는 베트남 전쟁 당시 구찌 지역 방어를 위해 사용됐던 구찌 터널을 방문했다. 미군보다 몸집이 작고 기술이 약했던 베트남 민족은 본인들의 작은 체구와 더위에 강한 특성을 살린 전략을 세웠다. 작은 굴에 숨어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부비트랩과 같은 함정을 만들어 몸집이 큰 미군들과 싸웠다. 모든 사람이 단점이라고 말하는 민족의 특성을 장점으로 만든 베트남의 민족성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높이가 대한민국 성인 평균 신장에 미치지 못하는 터널에 직접 들어가 150m 정도를 걸어봤다. 잠깐이었지만 터널에 들어간 순간 덥고 힘들었는데, 이곳에 숨어서 전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해외역사문화탐방 1조가 미케비치에서 촬영한 사진/사진·최이재 기자
해외역사문화탐방 1조가 미케비치에서 촬영한 사진/사진·최이재 기자
해외역사문화탐방 1조의 단체 사진/사진·최이재 기자
해외역사문화탐방 1조의 단체 사진/사진·최이재 기자

호찌민에서의 탐방이 끝나고 다낭으로 향했다. 다낭에선 청룡부대 주둔지와 하미마을 위령비에 방문했다. 하미마을은 다낭 해안에서 내륙으로 10km가량 떨어진 마을로 1698225일 대한민국 전투병력인 청룡부대 3개 소대가 마을 주민 135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바 있다. 희생자는 대부분 힘없는 노인과 아이들이었다. 하미마을의 위령비는 2000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에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그곳에서 당시 청룡부대 군인의 구두를 닦던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은 전쟁으로 인해 말을 전혀 할 수 없게 됐지만 당시 상황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해외역사문화탐방을 진행하며 어디서든 단체 사진을 찍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말을 잃은 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베트남에 와 들떴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낮 동안은 베트남의 역사를 탐방하고 저녁엔 탐방에서 배운 역사를 되새기는 세미나 시간을 가졌다. 함께 탐방하며 돈독해진 조원들과 우리가 베트남에 온 목적을 다시 새겼다. 필자, 함께 탐방을 다녀온 일행, 이 글을 보는 독자 모두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준 아픔의 역사를 기억해야 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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