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대신문 문화상 소설 부분은 예년보다 많은 수의 작품이 들어왔다. 그 중 당선권이라고 생각한 것은 , 두 작품 뿐이었다. 는 제목과 같이 ‘러너’라고 명시되는 문제적 인물의 파토스와 매력, 그리고 그런 ‘러너’를 선망하는 ‘나’의 평범함이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의 최고의 미덕은 ‘평균의 불행’이라고 명명되는 나의 현실과 절망의 진실성이다.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이 정도의 우울은 발에 채인다’, ‘차라리 나도 너처럼 확실하게 불행하면 좋을텐데’ 같은 발화는 이 시대 청춘들의 가장 진솔한 목소리로
열무 가족들이 다 모인 추석날따온 열무가 아깝다는 할머니의 고집에하나 둘 씩 가시방석을 떠나소금물에 적신 손 다라이 앞에서 몸을 못 가누시는 할머니와자기가 더 빨리한다며, 비키라 고함치는 외손주체념한 딸들과이럴거면 오지 말자는 안방 남정네들 요양병원서 밥 잘 주지 똥 오줌 가려주지안 좋을 게 뭐가 있냐는 아버지의 말씀은할머니에게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지 않았을까 이제 무언가를 심지 않고선 살 수 없는 게 아닐까 항상 기르고 키우는 일만 하셨던 할머니는제대로 서지 못해, 언덕을 기어서 가더라도 그러다 자빠져서 죽더라도, 언덕을 오르는그
1. 하천 변에 수 놓인 봄버들을 보았다. 휘늘어진 가지에 무성하게 핀 녹황색 버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색이다. 버들 나무는 만동에 피어난다. 곧 다가올 봄이 산야를 오색 비단처럼 물들이기 전, 노란 버들은 창백한 하늘 위로 그 첫 구슬을 꿴다. 드문드문 보이는 흰 목련도 정오의 빛을 받아 따뜻한 색으로 번진다. 마을 입구부터 저 멀리 보이는 높은 둔덕까지 아지랑이 치는 녹황색이 만연하다. 상경한 지 팔 년 만에 보는 고향이다. 나는 동구에 서서 내 몸 곳곳에 때 묻은 인공적인 것들을 떨쳐내듯 크게 숨을 쉬었다. 풋내가 섞
한자랑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소설이나 소감이나 제목이 좀 거창해진 감이 있습니다. 모교 신문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양쪽 모두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자신만의 취약한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공개된 글에서 밝히는 것은 처음이지만, 저는 ‘애증’이라는 감정에 취약한 사람입니다.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 그것은 더욱 커져서, 저는 사랑하는 이를 미워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쉽게 무너져내리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세상은 각자의 시야에 따라 다르게 보이며, 사진은 그 고유한 시야를세상과 나눌 수 있는 ‘창(窓)’ 역할을 합니다. 이 창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세상을 내보일 수 있습니다. 이때 한 장의 이미지는 찍는 이와 보는 이 모두에게 무한한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며,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업은 제게 언제나 큰 즐거움입니다. 대학 생활 동안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사진으로 남기곤 했습니다. 주로 손에 들고 다니기 좋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날씨가 맑은 날에는
2024년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에는 황윤우 학생의 를 주제로 버스 정류장의 같은 책가방을 맨 단짝 친구, 건국대 도란이길을 손잡고 걷는 엄마와 아들, 베니스의 한 거리에서 자매처럼 보이는 한 쌍의 중년 여인, 반려견에게 담요를 내어준 채 호텔과 샤워를 위해 840유로가 필요하다는 팻말을 든 채 책을 읽는 남성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번 문화상 사진 부문 1위 작품은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느낌을 담으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필름 카메라,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등 다양한 촬영도
올해 건대신문 문화상 시부문에 응모된 작품들은 대체로 세 경향성을 가진다. 하나는 부드러운 여백을 가진 4월의 밝은 햇살과 같은 작품군, 다른 하나는 사이버펑크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군, 마지막으로 자의식으로 뭉쳐 있지만 그만큼의 긍정적 패기, 의지도 뚜렷이 각인된 작품군이 그것이다. 마지막의 경우 불가항력적 ‘고립’과 ‘죽음’, 막연한 ‘공포’가 중층을 이루는 것이 특징인데, 물론 이 현상은 실존적 성찰 없이 일상을 지속하는 사회에 대한 응전에 해당한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는 언어-이미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림으로써 예
사실 저는 시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2학기가 그 시작이었는데요. 문과대 문학패, 글 꾼이라는 동아리를 시작하면서였습니다. 동아리에서 얻은 것 이 정말 많습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것이 합평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좋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하지만 처음 내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내 작품과 공명하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아, 어쩌면 진정으로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부끄러움이 들었습니다.이것을 깨닫고 난
[소꿉친구] 촬영 : 2024/9/4 경기도 안양시내 버스정류장MINOLTA RIVA ZOOM 115, 1/250s, f/8, ISO 100버스정류장에 두 어린 시절이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바짝 붙어 앉은 단짝들은 동글동글 귀여운 뒷통수도, 등을 다 가리는 큰 책가방도 꼭 닮아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나무처럼 아이들의 우정도 울창히 자라나길 바래봅니다.[도란도란 모자(母子)] 촬영 : 2023/3/31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 도란이길Canon EOS 800D, 1/80s, f/5.6, ISO 100건국대학교의 찬란한 어느 봄날, 도
무슨 일인지 올해 건대신문 문화상 시부문에 응모한 작품 대부분은 ‘고립’과 ‘쓸쓸함’, ‘망설임’에 집중되고 있다. 팬데믹이 지나고 사회가 빗장을 푼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 때문이며 갈수록 분명해지는 자본주의 물신의 비인간적인 폭력과 위악(僞惡)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3년을 단절 속에서 살아온 만큼이나 이 사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망은 자못 크다. 필자에게 건너온 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사태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또한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아울러 ‘고립’이 초래한 자기
텅 빈 거리에 여자아이가 홀로 서 있다. 이미 떠나보낸 그 아이가 길을 잃은 듯 다시 내 눈앞에 서 있다. 맞아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있지나는 다시금 아이에게 길을 제시해야만 한다. 작년의 내가 가르쳐준 지름길에서 아이는 다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어쩔 줄 모르는 발걸음으로 줄곧 이곳에서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길을 알려주고 싶다.아이 앞에 놓인 수많은 갈래들을 살피다 지름길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멈춘다. 그래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지그녀는 떠밀리듯 그 길에 오른다. 나는 내년 이맘때쯤 그녀
응모작 중에서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은 〈흐늘흐늘한 것들〉과 〈환의 천재〉 였다. 두 작품 모두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의 통찰을 보여줬고, 정직한 문장, 주제에 접근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환의 천재〉 는 익숙한 연애담으로 시작한다.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두 남녀의 관계는 이들의 아랫집에 펫숍이 들어오면서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펫숍은 ‘사랑’과 ‘소유’라는 오래된 질문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를 때, 너를 안다고 할 때, 과연 그 언어는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소외시키는가. 사랑의 폭력성을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이거 책으로 너무 도망치는 거 아닌가?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을 조금 더 나중으로 미루고 소설을 읽던 중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책 읽는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제 취미란에는 독서가 빠졌습니다. 독서량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늘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찜찜함을 느꼈던 탓인 것 같습니다. 그 독서량이 마음이 힘들 때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등 특정한 이벤트가 있을 때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올해는 유난히 해내야 하는 것, 선택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는 건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몇 년이 지나도, 그때의 추억이 생생하게 느껴지니까.촬영한 사진을 보면 날개를 지닌 생물이라는 점에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그 순간순간을 포착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생명체의 사진을 찍을 때는 더 그런 것 같다. 구도, 색감 등에 중점을 두는 것도 좋지만, 먼저 타이밍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사진도 타이밍이다.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예전에
[서로를 의지하는]촬영 : 2023년 3월 18일 건국대학교 일감호아이폰14pro ISO32 82mm f2.8 1/365s건국대학교의 상징 동물 거위, ‘건구스’를 촬영한 사진이다. 넘실넘실 일렁이는 일감호의 물, 그 위에 두 마리의 거위가 나란히 물을 마시는 아름다운 순간을 담았다. [아름답고 달콤한 곳을 향해]촬영 : 2023년 5월 29일 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관 앞아이폰14pro ISO32 113mm f2.8 1/99s노란 금계국 위에 앉은 ‘흰나비’를 담은 사진이다. 쏟아진 비로 인해 시든 꽃과 활짝 핀 꽃이 공존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2023학년도 건대신문 문화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소설 부문은 정혜수(공과대·기항공19) 학우의 △시 부문은 강민정(공과대·화공20) 학우의 △사진 부문은 김하원(상생대·축식23) 학우가 당선됐다. 정혜수 학우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소설 부문에 입상했다. 올해 문화상에 지원한 작품 수는 제출 양식이 미준수된 작품을 제외하고 △소설 9편 △시 32편 △사진 16장이다. 수상자에게는 △소설 부문 100만 원 △시 부문 80만 원 △사진 부문 60만 원의 상금과 KU미디어센터장상이 수여된다
흔적 너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니 내 시간은 시계와 같아 숨막히게 정교한 태엽부품 하나하나가 작은 톱니바퀴들을 맞물리며 거대한 시침을 돌게 해그 거대한 금속 틈 사이로 분홍빛 설렘을 풍기고 나는 그 향기의 째깍임에 맞춰 눈꺼풀을 깜빡이지내 지구는 네 설렘의 시침을 축으로 돌아 그래서 나는 매일 펜을 들어 그 역사를 기록해그건 일종의 사명감이지그 아름다움이 종이에 기록되어 유물이 되고 언젠가 역사의 일부가 되어 미래를 정의할 수 있도록 하지만 동시에 그건 오만함이지아름다운 것들은 기록되지 못해불빛과 꽃향기와 밤과 만년필의 사각거림은 아
2023년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이용해 자연의 모습을 잘 포착한 김하원 학우의 응모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번 사진 부문에 선정된 작품 네 점은 서로를 의지하는 듯한 모습으로 건국대 일감호를 헤엄치는 거위의 다정한 모습, 노란 금계국 속에 흰 나비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은 자태를 잘 담아낸 사진, 5월의 일감호에서 날개짓을 하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일렁이는 물결과 조화를 잘 이룬 찰나의 순간을 잡아낸 작품, 끝으로 강원도 정선의 비룡굴에서 야행성인 박쥐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낮잠을 자
해파리가 떠났다. 내게 익숙한 죽음은 아니다. 내가 아는 죽음은 원래의 색이 바래고 비린내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해파리는 여전히 반투명하고 비린내가 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평소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죽었다고 느낀다. 사실 몇 번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해파리가 갓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유영하는 것을 지켜보다 문득 이 해파리에게 마음을 너무 쏟고 있다는 걸 의식했을 때 그 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뼈가 있는 작은 것들은 화장을 많이 한다고들 한다. 패각이나 껍질이 있으면 화분 같은 곳에 묻었다가 속이
[서울의 광망(光芒)]촬영:2022.09.20 남한산성 서문SONY a6000 SEL18135mm/ ISO160 61mm f5 1/2500s밝은 낮 시간의 서울의 풍경입니다. 남한산성 서문에서 촬영하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구름을 관찰할 수 있으며 롯데타워부터 뒤에 남산까지 맑은 서울의 풍경과 구름을 지나는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빛의 산란] 촬영: 2022.09.20 남한산성 서문SONY a6000 SEL18135mm/ ISO200 43mm f5.6 1/320s이번에는 해가 저물어가는 서울의 풍경입니다. 저물어가는 노란 태양 덕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