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우 신문사진부장
박지우 신문사진부장

19살 때 책 강연회를 위해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었다. 해당 소설은 개인에 대한 언론의 폭력성과 대중의 마녀사냥을 다루고 있다. 당시에는 기사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다. 소설은 익명의 대중이 평범한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내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단편적인 글만 보고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판단해 버리는 대중의 태도가 부조리하다고 느꼈다. 또한 인간의 불건전한 감정을 자극하며 자신의 신문을 보게끔 유도하는 일간지의 옐로 저널리즘적 태도에 분노했다. 기자라면 정직한 보도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데, 소설 속 기자들은 모두 자극적이고 화려한 거짓에 현혹돼 있었다. 이러한 소설을 학보사 기자의 입장이 되어서 다시 읽어 봤다.

카타리나 블룸은 꼼꼼하며 세심한 성격을 가진 수줍은 여성이다. 그녀는 한 박사 부부의 집에서 가정관리사로 일하고 있었다. 실제 소설에서는 그녀를 이렇게 묘사한다. "카타리나가 과격하다면, 그녀는 과격하리만치 협조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적입니다." 그랬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어 대중 앞에 서게 된다. 카타리나가 살해한 사람은 주요 일간지 차이퉁의 기자 퇴르게스였다. 어쩌다 그녀는 기자를 죽인 살인자가 되었을까?

카니발 시즌 댄스파티에서 카타리나는 강도 용의자 괴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사실이 경찰의 수사망에 걸리고, 해당 수사 내용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카타리나의 명예가 짓밟히게 된다. 매일 같이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대중은 이를 있는 비판 없이 수용하면서 카타리나에게 사회적 폭력을 가한다. 퇴르게스는 급기야 투병 중인 카타리나의 어머니를 찾아가 카타리나에 대해 인터뷰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편집해서 보도한다. 이후 해당 기사를 읽은 카타리나의 어머니는 사망하지만, 기사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도를 넘은 명예 훼손이 계속되자 그녀는 결국, 퇴르게스를 살해한다. 카타리나에 대한 악의적 보도 이후 그녀에게 쏟아지던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눈에 보이는 폭력',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1974년도에 출판된 이 소설을 2024년에 다시 읽었음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구절이 아주 많았다. 이는 현재의 언론이 1974년도 속 언론과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50년이나 흐른 시간 속에서 언론의 어두운 이면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발전한 것처럼 보였다. 과거 언론의 일방적인 수용자였던 대중은 현재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정보를 만들다 보니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가짜뉴스가 만연해졌다. 더 나아가 조회 수를 위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의 카타리나 블룸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보도자가 기사 작성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보도해야 한다. 나 또한 학보사 기자로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사를 쓰려고 한다. 기사를 읽는 대중은 주체적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비판적으로 기사를 읽는다는 것은 있는 같은 내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읽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사건이더라도 글을 쓴 사람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달라질 수 있기에 하나의 글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익명의 대중으로부터 나를,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다.

정지된 것에는 속도가 없지만 풍경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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